임진왜란이 만든 왕세자
제14대 왕 선조와 후궁 공빈 김 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선조는 당시 왕비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고 후궁 공빈 김 씨 사이에 장남 임해군과 차남 광해군이 있었습니다. 장남 임해군은 성품이 포악해서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당시 선조가 즉위한 지 20년여 년이 지났음에도 세자를 책봉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이 후궁의 소생이기 때문에 후계자만큼은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자녀로 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선택의 여지 없이 광해군이 18세에 세자로 책봉됩니다. 조선 왕조가 살아남느냐 무너지느냐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선조는 피난을 가면서 전쟁의 지휘권을 광해군에게 넘기기로 하면서 조정을 둘로 나누는 분조(分朝)가 발생하게 됩니다. 피난 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의병들을 독려하고 백성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잘 해냅니다. 7년간 전쟁이 끝나자 선조는 후련함보다 도망갔던 왕으로서 창피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위협받는 왕세자의 자리
전쟁을 치르면서 광해군은 다음 왕으로서 자질을 배웠고 백성들의 지지도 높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광해군이 선조에게는 기특함 보다 후궁의 자녀라는 찝찝함과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졌습니다. 궁궐을 버리고 도망간 자신보다 인기 많은 아들을 보는 것은 왕으로서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광해군에게 최대위기가 찾아오는데 바로 아버지가 새로 맞이한 왕비에게서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51세의 선조가 19세 어린 왕비를 맞이하였는데 그녀가 인목왕후입니다. 새어머니 인목왕후는 광해군의 나이보다 9세나 어렸습니다. 선조가 그토록 바라던 적장자가 태어났고 그 이름은 영창대군입니다. 도망간 아버지를 대신해 모진 전쟁을 겪으며 조선을 지켜왔던 광해군 입장에서는 갓 난 아이에게 왕세자를 빼앗기게 생겼으니 상실감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신하들도 두 세력으로 갈라지면서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적장자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로 나뉘게 됩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3세가 되던 해에 선조가 승하합니다. 적장자이지만 3살이 왕이 될 수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광해군 개혁정치
광해군은 험난한 전쟁을 겪은 왕이라 백성들의 궁핍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복구를 위해 큰 노력을 합니다. 광해군이 즉위한 1608년은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되는 해였고 전란수습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광해군은 여러 개혁정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1) 양전 사업 실시: 전쟁을 치르면서 토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세금을 걷는 기준이 되는 토지대장에 누락된 토지가 많아 전면적인 재조사를 합니다. 양전 사업을 통해 안정된 세금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2) 중립외교: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여 후금을 건국했고 곧이어 명을 공격했습니다. 후금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려 실리 중심의 중립외교를 펼칩니다.
3) 대동법 시행: 방납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조세를 쌀로 통일하여 거두는 대동법을 경기도에 시범적으로 실시합니다. 사또와 방납 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니 대동법을 반대하지만, 다행히 시행되고 숙종 대에 이르러 전국으로 확대됩니다.
4) 동의보감 편찬: 편찬은 선조 때부터 시작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재개되어 수백 권의 의서를 종합한 최고의 의서 동의보감이 간행되었고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합니다.
광해군의 몰락 폐모살제와 인조반정
창덕궁 재건과 경덕궁, 인덕궁, 자수궁을 중건하면서 수도를 복구하던 광해군은 무리한 토목공사를 벌여 재정 악화와 민심을 잃어갑니다. 대북파는 문경 새제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시켜 광해군을 제거한 후 영창대군을 옹립하기 위한 자금으로 쓰인다고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광해군은 그런 명분으로 새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유배 보낸 후 살해하는 등 과적한 수단으로 정적들을 제거합니다. 폐모살제와 명에 대한 은혜를 잊고 오랑캐인 후금과 친선을 유지하는 중립외교가 반정의 명분이 되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몸을 숨겼으나 금세 발각되고 강화도로 유배됩니다. 49세의 나이로 폐위되고 18년의 유배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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