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왕 명종 (1545~1567년)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과 을사사화
명종은 제11대 왕 중종과 문정왕후 윤 씨의 적자로 장자 인종이 후사를 잇지 못하고 병사하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명종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문정왕후가 8년 동안 수렴청점 합니다.문정왕후는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자 남동생 윤원형과 그의 처 정난정의 도움을 받아 인종을 지지하던 대윤파와 대립하며 아들을 지켜왔습니다. 인종이 일찍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게 되면서 소윤 파의 세상이 오게 됩니다. 중종 때부터 맞서 싸워 오던 대윤(윤임)과 소유(윤원형)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권력을 잡게 된 소윤 세력이 대윤파를 모두 숙청한 사건이 ‘을사사화’입니다.
인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불교 사랑
조선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유교를 받들던 국가였지만 조선 왕실에서는 조용히 불교를 받들고 있었습니다. 선왕이었던 세종, 세조 모두 불교를 사랑했습니다. 조선 왕실 중에서도 불교 사랑의 최고는 문정왕후입니다. 문정왕후는 세조도 차마 하지 못한 불교진흥정책을 펼칩니다. 승려 보우를 봉은사 주지 스님으로 임명하고 불교를 장려하기 위해 도첩제를 실시합니다. 전국에 300여 개의 절을 공인하기도 합니다. 불교진흥정책을 펼치자 전국에 있던 유생들이 각지에 반발했으나 명종은 어머니에게 한마디도 못 하고 20년 동안 불교 진흥책은 계속되었습니다. 문정왕후가 죽고 후대의 사림파 학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듣습니다. 유교 국가에서 불교를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을묘왜변과 임꺽정의 난
명종의 재위 기간 22년 동안 조선은 나라 안, 밖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안으로는 왕실 외척의 폭정이 심했고,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비리가 난무했습니다. 밖으로는 왜구가 쳐들어와 피해가 심했습니다. 왜구는 전라남도 강진, 영암 일대를 쳐들어와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1555년에 을묘왜변이 일어나고 비변사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 수군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명종 때 임꺽정의 난이 발생하게 되는데 조선에서 일어난 반란 중에서도 꽤 길게 지속되었습니다. 조선의 부정부패가 심각하며 세금 부담이 크고 극심한 흉년이 지속되어 백성들이 살기 힘들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종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으나 병으로 14세에 사망하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중종의 장자 인종과 적자 명종 모두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 왕위는 중종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자손에게 넘겨졌습니다. 중종과 창빈 안씨 사이에서 일곱 번째 태어난 아들의 세 번째 아들 하성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