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왕 세조 (1455~1468년)
형제와 조카를 죽이고 피로서 이룬 세조의 왕권
세종의 뒤를 이어 적장자인 5대 왕 문종, 6대 왕 단종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문종은 30년 동안 왕세자 자리에서 아버지 세종을 도와 큰일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문종은 세종을 많이 닮았고 병약한 몸까지 닮았습니다. 앉아서 유학과 학문에만 몰두해 약한 몸이 더 쇠약해져 병을 얻었는데 세종이 승하한 후 삼년상을 치르며 몸 상태가 악화합니다. 세종은 문종 이외의 다른 아들들에게도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를 주었는데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종은 문무를 겸비하고 용맹하며 야심이 많은 바로 아래 동생 수양대군이 자신의 어린 아들 단종을 위협하지 않을지 늘 걱정이었습니다. 결국 문종은 12세의 어린 아들을 두고 2년의 짧은 재위 기간을 끝으로 승하합니다. 단종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승하한 후 혈혈단신으로 즉위하였고 야심가 수양대군은 곧바로 본인의 욕심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렸습니다. 1453년 문종의 명을 받아 단종을 보호하던 영의정 김종서를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으로 숙청합니다. 수양대군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게 된 정변인 계유정난이 발발한 것이었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은 조선 핵심 관직 자리에 본인의 사람들로 임명합니다. 위태롭게 왕위를 이어가던 단종은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유배되고 죽게 되자 결국 1455년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줍니다. 그렇게 39세의 나이로 학수고대하던 제7대 왕 세조가 됩니다. 형식적으로는 양위였지만 사실상 숙부의 세력이 무서워 내어 준 것으로 찬탈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조는 왕이 되기 전 김종서 등 단종을 따르는 세력을 제거했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종이 손자였던 단종을 아꼈는데, 단종을 세손으로 책봉하고는 집현전 학자들에게 세손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세조가 단종의 자리를 빼앗고 왕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집현전 학자들은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단종 복위 운동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단종은 왕위를 되찾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사는 실행되기 전에 배신자 김질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6명의 충신을 사육신이라 하고 살아 있으나 세상을 등지고 평생 죄책감에 살았던 사람들을 생육신이라 부릅니다. 세조는 그 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 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냅니다. 여기서 단종 복위 운동은 끝나지 않고 또 발각되고 단종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인간적인 모습 효자, 애처가 세조
세조는 앞의 글에서 볼 때 피도 눈물도 없는 폭군일 것 같지만 생각 외로 자신의 어머니 소헌왕후와 아내 정희왕후 윤 씨에게 따듯하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소헌왕후의 말년에 마지막으로 요양한 곳이 세조의 개인 사저였을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세조는 보기와 다르게 애처가였는데 정희왕후를 매우 사랑해서 나들이 갈 때, 사냥터에 갈 때도 부인이 함께 갈 정도로 부부 금실이 좋았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한 명의 부인과 백년해로 하고 싶어도 신하들이 그렇게 두지 않았습니다. 후사를 생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조는 후궁이 단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볼 때 소문난 애처가였다고 생각됩니다.
세조의 업적
1)왕권 강화: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했던 집현전 학자들이 자신을 공격하려 드니 처형하고 집현전마저도 역적의 소굴로 보여 폐쇄하게 됩니다. 태종 때 실시했던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또 계유정난에서 공을 세운 인물,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좌익공신으로 삼았습니다.
2)경국대전 편찬 시작: 세조 이전에 조선경국전, 경제육전, 속육전의 법전이 있었지만, 현실과 동떨어져 조선만의 법전이 필요했습니다. 체계적인 법전이 간절했던 세조는 법전 작업에 착수했고 완성은 성종 때 이루어집니다.
3)원각사 창건, 원각사지 10층 석탑: 아버지 세종은 불교를 좋아했는데 세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년이 되어 세조는 더욱 불교에 심취하게 되는데 이유는 세조가 피부병으로 심하게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 유교는 현세적인 성격이 강하고 불교는 배척했지만, 세조는 불교 발전에 힘썼습니다. 현재 원각사는 터만 남아있고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오늘날 종로 탑골 공원 자리에 있습니다. 석탑은 국보 제2호의 유형 문화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