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500년

제9대 왕 성종 (1469~1494년)

1- 2021. 10. 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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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한명회와 어머니의 인수대비 힘으로 왕이 된 성종

성종은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와 공신의 한확의 딸 소혜 황후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선대왕이었던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왕위를 계승해야 했으나 당시 4살로 나이가 너무 어렸고, 의경세자의 첫째아들 월산대군은 병약하여 둘째 아들 자을산군이 능력이 출중하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서열 3위로 모두를 제치고 13세의 나이로 9대 왕이 됩니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데는 성종의 장인이었던 권신 한명회와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정치적 능력을 가지고 있던 정희왕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됩니다.

 

 

할머니 정희황후의 수렴청정

성종은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20세 성인이 될 때까지 7년간 할머니 정희황후가 보필하여 수렴청정합니다.수렴청정은 어린 나이의 왕이 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왕을 보필하고 국정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지만, 학문의 깊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성의 역할은 자녀를 낳는 것이었기 때문에 남성만큼의 공부는 하지 못했습니다. 수렴청정이라 해도 왕실의 여성이 혼자서 국정을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왔습니다. 수렴청정이나 원상제 같은 제도는 왕에게 불편한 규제였고 왕권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성종은 수렴청정 기간 동안 공붓벌레처럼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조선 시대 경연이란 유능한 신하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방과 후 수업이나 과외 같은 것입니다. 성종은 모범생으로 경연에 거의 매일 참석했으며 25년 재위 기간 동안 9,229회나 참석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 문물을 완성한 성종의 업적

성종은 조선의 정치제도의 기틀을 마련할 만큼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꼽으라면 세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경국대전의 완성입니다. 이전에도 법전은 있었지만, 경국대전은 매우 세밀하며 조선 독자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만의 고유법이며 모든 것이 법의 기반으로 정치제도를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종은 할아버지 세조가 없앴던 많은 것을 부활시켰으며 세종대왕의 업적을 본받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세조가 폐지했던 경영제도를 부활시켰고, 지방 행정기관인 유향소는 중앙집권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가 성종 시기에 부활하였습니다. 조선이 건국될 당시 사대부 중 급진파는 개국공신으로 훈장을 받아야 하는 훈구파가 되고, 태종 이방원을 도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사람들, 단종을 밀어내고 왕이 된 세조를 도운 사람들도 훈구파가 됩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온건파 사대부 대부분은 지방으로 내려가 제자들을 양성하고 성리학 연구에 힘썼습니다. 성종은 지방의 온건파 사대부를 대거 등용해 관리들의 비리는 감찰하는 역할을 맡겨 훈구파를 견제하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세력이 커질 대로 커져 있었던 훈구파는 사림파에 의해 견제받았고 사림은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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