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똑똑한 왕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은 1367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왕조교체를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우지만, 막내 이복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는 굴욕을 겪습니다. 결국 1차,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1400년 3대 왕 태종이 됩니다. 불같은 성격에 난을 두 번이나 일으킨 태종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조선의 27명 왕 중에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왕입니다. 고려말 우왕 9년에 과거시험에서 7등으로 급제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전쟁에서 인정받으며 성장했지만 공부를 못했다는 것이 콤플렉스였습니다. 고려 시대 과거는 가문의 권세에 힘입어 채용되는 제도였습니다.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 급제를 했으니 이성계와 신의 황후 한 씨는 무척 기뻐했다고 합니다.
태종의 업적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정도전에 의해 신권 중심의 국가로 재상이 실권을 장악하는 정치가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태종은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백성들의 삶도 안정된다고 믿었습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곧바로 왕권을 강화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체제를 정비합니다. 의정부에는 오늘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있었고, 6조에는 오늘날 각 부의 장관급이 있었습니다. 기존 6조는 의정부를 거쳐 왕에게 보고되는 관계였으나, 태종은 정치 업무를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국왕에게 올려 국왕의 재가를 받는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6조 직계제로 왕권은 강해지지만 의정부의 기능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척 세력과 1, 2차 왕자의 난으로 개국공신을 제거합니다.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바로 아내, 원경 황후 민 씨입니다. 부인 민 씨의 남동생들도 왕자의 난에 가담해 이방원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되고 그들을 멀리합니다. 외척 세력이 힘을 키워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견제하려고 했습니다. 태종은 고려의 핵심 기구였던 중서문하성의 문하부를 혁파하고 재신은 의정부로, 낭사는 사간원으로 귀속시켜 사간원을 독립적인 간쟁 기구로 설치했습니다. 사간원의 독립은 언관제도를 따로 분리하는 것인데, 언관제도는 왕에게 직언하는 사람입니다. 언관들은 왕과 신하들의 잘잘못을 비판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사간원을 따로 독립시켜 직속상관이 왕이 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왕명을 받들어 법률을 집행하는 의금부와 왕의 비서 역할을 하는 기구 승정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3년마다 호구를 조사하여 호적을 작성하도록 하고 백성의 신분을 명확히 하고 노동력을 제공할 대상자를 정확히 파악하여 관리하기 위한 호패법을 실시했습니다. 정종 때 개경으로 옮겼던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재 천도하고 창덕궁을 새로 건설했습니다. 태종은 왕에 대한 간절한 마음만큼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태종의 골칫거리 맏아들
태종은 1명의 왕비, 후궁 9명, 12남 17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조선은 유교 사회라 왕실이건 일반 가문이건 적장자가 우대했기 때문에 태종의 장남이 뒤를 이어 왕이 되어야 합니다. 태종이 형제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아 왕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후대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아들들에게 우애를 가장 강조했다고 합니다. 태종이 즉위 후 당연히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 세자가 됩니다. 그리고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자유를 줍니다. 둘째 아들은 불교에 심취하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은 공부에 심취해서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중요한 책은 100번, 200번도 읽으며 교양이나 문화에 대해 조예가 깊었습니다. 첫째 아들 양녕대군은 태종이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세자에 책봉됩니다. 하지만 양녕은 점점 빗나가기 시작하더니 탈선의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주로 여자 문제들로 탈선했는데 관료의 첩과 간통을 저지릅니다. 태종은 격노했지만, 양녕은 반성은 고사하고 아버지 태종에게 반항의 편지를 씁니다. 세자의 계속된 탈선에 태종은 실망하게 됩니다. 결국 1418년 양녕을 세자에서 폐하고 셋째 아들 충녕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태종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충녕에게 왕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종은 충녕이 세자가 된 지 2개월 만에 왕위를 물려줍니다. 태종은 4년간 상왕으로 군사 문제 등 중요한 문제에 참여하며 세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습니다. 태종은 조선의 왕 중에서 자발적으로 왕위를 물려준 유일한 왕입니다. 태종은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으로 오늘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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