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위의 여왕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순조는 1790년 22대 임금 정조와 후궁 수빈 박 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순조는 11세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 정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결국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호적상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됩니다. 정순왕후는 15세에 21대 임금 영조의 두 번째 왕비가 되었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보다도 10살 어렸습니다. 하지만 족보상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습니다.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정조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이전으로 돌려놓기 시작합니다. 사도세자의 신원 회복도 없던 일로 만들고 규장각의 권한을 축소했습니다. 정조를 따르던 시파 대신들을 대거 숙청하고 벽파 신하들을 대거 등용합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은 3년이었는데 정조가 24년 동안 노력한 모든 것이 물거품 되고 말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학문이 유입되었는데 그중에 천주교도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오늘날의 카톨릭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조상께 드리는 제사도 거부하는 교리였습니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하고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정조때부터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조선의 정서로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자마자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해를 주도했던 세력은 정순왕후의 측근인 노론 강경 세력이었습니다. 정조 시절 성장했던 남인 세력이 몰락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실학을 집대성했던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었고 신유박해로 18년간 귀양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안동 김씨 집안의 세도정치
순조 때부터 철종까지 3명의 임금을 거치면서 약 60년 동안 세도정치가 이어졌는데 이로 인해 왕권은 약해지고 안동 김 씨나 풍양 조 씨 같은 가문들이 권력을 독점합니다. 세도정치란 원래 의미는 정치의 도리를 널리 교화시키고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외척 정치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말로 사용됩니다. 안동 김씨인 김조순의 딸이 순조의 첫 번째 왕비가 된 순간부터 세도정치가 시작됩니다. 김조순은 영조가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김창집의 후손으로 정조는 김조순의 집안을 마음에 들어 했고 김조순이라면 아직 어린 세자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조이 생각과는 다르게 순조의 외척이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1811년 홍경래의 난
‘홍경래의 난’은 순조 11년에 평안도 지역에서 일어난 민란으로 심각한 지역 차별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조선의 평안도는 북쪽 국경선과 붙어있어 전쟁이 자주 일어나고 북방 출신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성리학 보급이 더디고 교육 부분이 약했습니다. 자연히 서북 출신 과거 합격자 배출이 힘들었고 조선사회에서 왕따를 당한 지역이지만 서북지역은 자원이 많고 광산업으로 상업이 발달한 장점이 이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어느 지역보다도 경제적인 부를 쌓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데 사회적 지위는 낮아 차별대우가 극심한 곳이 바로 서북지역 평안도였습니다. 결국 이에 반발한 홍경래는 스스로를 평서대원수라 부르며 대규모 난을 일으켰고 많은 상이 홍경래의 난을 후원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앙정부의 관군에 의해 홍경래 세력은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죽음
순조는 순원왕후와 사이에서 아들 효명세자가 있었고 3세가 되던 해 왕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효명세자는 공부도 잘했고, 외모도 출중했다고 합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안동 김씨 집안의 세도정치로 무력했던 아버지 순조와는 달랐습니다. 세도정치 때문에 왕권이 약화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세가 되는 해에 순조의 대리청정을 하게 되면서 총명함은 빛을 발했습니다.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이며 개화파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박규수 등을 등용하여 세도 정치로 무너져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키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리청정 3년만에 갑자기 병이 걸려 22세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조선을 개혁하고자 했던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은 다시 세도정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순조의 손자, 효명세자의 어린 아들이던 헌종입니다. 헌종이 왕위에 오른 나이는 불과 8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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